[경험] 끊김이 없는 컨텍스트 (Seamless Context)

키보드에서 알렉사까지

From Keyboards to Alexa

이 글에서는 사라지는 인터페이스를 다룬다. 바로 앞 글에서는 인터페이스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더니 이번에는 사라진다고 한다. 무슨 뜻인가? 인터페이스가 없어짐으로서 가장 완벽한 (끊김이 없는) 연결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디어의 역할을 하도록 돕는 실체, 컨텍스트를 연결하는 주체로서 인터페이스는 보이지 않을 때, 만져지지 않을 때, 들리지 않을 때 가장 강력하다.

이 글에서는 ‘말’[1]을 중심으로 인터페이스가 사라지는 현상, 이에 따라 사용자와 인터페이스 간에 새롭게 등장하는 관계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특히 아마존의 ‘알렉사’ 사례와 함께 연결된 세상의 인터페이스가 물리적으로 사라짐에 따라 새롭게 매개되는 사용자와 세상의 관계를 조망한다.

너무 익숙해서 새로운 인터페이스, ‘말(Spoken words)’

“알렉사, 쇼팽의 피아노곡 부탁해”, “알렉사, 지금 날씨 어때?”, “알람 좀 맞춰”, “TV 켜줘”, “알렉사, 내 발음이 그렇게 별로니?!” 하루에 알렉사를 가족 이름만큼 자주 부른다. 알렉사는 블루투스 스피커로 알려진 아마존 ‘에코’의 이름이다. 음성 인식과 스피커 기능이 두드러지지만 무엇보다 데이터 클라우드와 연결된 컴퓨터다.

알렉사와의 동거를 증언하는 사례들은 넘쳐난다. 글을 모르는 취학 전 어린아이들의 친구[2] 되고 육아에 고달픈 엄마의 친구도 된다.[3] 어느 공상과학 작가는 알렉사를 와이프에 빗대어 생생하게 그녀와의 동거 일기를 쓰기도 했다.[4]

알렉사의 이름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한 아마존 에코 리뷰(http://www.amazon.com/review/RJVDJIP1OE8/ref=cm_cr_dp_title?ie=UTF8&ASIN=B00X4WHP5E&channel=detail-glance&nodeID=9818047011&store=amazon-home)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아직은 질문 목록이 있을 정도로 그녀의 인지 범위는 극히 제한적이다(이 글을 읽고 알렉사를 구입하려는 분들은 유념하시기 바란다. 인터페이스 개념이 아니라 제품 리뷰라면 다르게 썼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오케이 알았어!’, ‘모차르트 피아노곡 나간다!’라고 대답하고 음악이 거실에 울려 퍼지면 나는 금세 착각에 빠진다. 내 손에 스마트 기기 없이도 이뤄지는 기계와의 첫 상호작용이다. 저토록 제한된 인지 범위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이런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가?

말에서 출발한 인터페이스가 오랜 여정을 거쳐 다시 ‘말’로 돌아왔다. 문제는 이 말이 다시 어떤 인터페이스에 담기는가에 따라 다른 행위, 다른 연결, 다른 관계를 생산한다는 점이다.

이 새로운 경험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경험을 환기시킨다. 익숙함을 다시 만나는 놀라움이다. 그래서 새롭다. 우리가 평생, 인류가 역사 속에서 함께 해 온 인터페이스, 바로 ‘말(parole, spoken words)’이다. 말에서 출발한 인터페이스의 진화는 오랜 여정을 거쳐 다시 ‘말’로 돌아왔다. 인터페이스에 항시 연결된 세상, 혼자 있는 것이 불가능해진 세상에서 인터페이스란 본질적으로 무엇인가? 이번 글에서는 말, 텍스트, 메신저(챗봇), 알렉사 등의 사례를 정리하면서 ‘관계’를 만드는 인터페이스의 쟁점을 살펴본다.

‘말(spoken words)’은 인류가 만들고 경험하고 공생해온 대표적인 인터페이스이고 연결 도구다.[5] 말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말이 가진 규칙(문법)과 형식, 어휘(데이터) 등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과 대화한다. 문제는 이 말이 어떤 인터페이스에 다시 담기는가에 따라 다른 행위, 다른 연결, 다른 관계를 생산한다는 점이다. 구어 즉 소리로 우리의 몸을 통해 전해졌을 때, (인쇄된) 활자에 담겼을 때, 키보드를 통해 모니터에 담겼을 때, 문자 메시지 즉 스마트폰 속 말풍선에 비밀스럽게 담겼을 때, 그리고 알렉사처럼 최초의 구어로 다시 돌아왔을 때 결과는 다르다.

각각의 인터페이스와 나의 관계 그리고 인터페이스가 규정하는 즉 연결하는 관계가 달라진다. 특히 내가 인터페이스의 존재를 인지하지도 못할 정도로 그 상호작용에 끊김이 없어질 때 그 역할 범위도 우리의 의식 범위를 벗어나게 된다.

말을 담은 인터페이스의 진화

말이 텍스트가 되자 인터페이스는 시간과 공간의 조율에 훨씬 적극적이 되기 시작했다. 동시간에 같은 장소에 있어야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말과 달리 글은 오래 생각하고 오래 기다리고 멀리 갈 수 있다.[6] 곱씹고 해석하고 저장하고 다시 꺼내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다.

필사본(manuscript)이었던 것이 인쇄 활자가 되고, 이것을 페이지 단위로 묶은 책이라는 인터페이스에 한 번 더 매개 되자, 공유되는 정보의 양과 소유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급격히 증가했다. 말하는 사람, 쓰는 사람보다 듣는 사람, 읽는 사람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세상이 온 것이다. 매클루언도 인쇄매체가 가져온 시각적인 획일화 현상을 «구텐베르그 갤럭시(The Gutenberg Galaxy)»에서 지적한 바 있다.[7]

그렇다면 말과 글을 쓰고 읽는 도구가 동시에 수없이 많아진 지금은 어떤가? 손안에 키보드가 주어지자 우리가 생산하는 콘텐츠의 양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 키보드가 인터넷에 연결되자 우리가 쓰고 찾고 보는 것 모두가 정보가 되었다. 이제는 앉아 있을 때도, 걸어 다닐 때도 우리는 키보드를 달고 이야기를 쏟아내고 공유하고 연결하면서 어느새 서로가 서로의 인터페이스가 되었다.

이 복잡한 입력 도구를 언제부터 내 손처럼 사용하게 되었을까? 이제는 손으로 글을 쓰려면 붓으로 그림을 그리듯 장인의 정신마저 필요하다.

메신저(채팅)는 말과 글 사이에 존재한다. 말인 것처럼 느끼도록 말풍선에 글자를 넣고 말풍선이 대화처럼 이어지는 인터페이스를 제안한다. 지금은 모든 문자메시지도 이런 형식을 띠지만 스티브 잡스가 2007년 실시간 대화인 듯 포장한 인터페이스[8] 선보이기 전까지 문자메시지가 얼마나 더 가볍고 유연해질 수 있는지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말이 글이 되고, 글이 메신저에 다시 한 번 담기자 이번에는 공간은 좁아지고 시간은 촉박해졌다. 우리는 한 뼘의 공간을 공유하게 되었고 관계는 더 은밀하고 친근하며 장벽은 없어지다 못해 귀찮아졌다. 문장은 짧아지고 대화는 길어졌다. 항상 대화에 임할 수 있도록 읽지 않은 메시지 수를 알려주고 퇴근한 후에도 알림은 계속된다. 낮이고 밤이고 이제 관계는 끊어지지 않는다. 인터페이스가 편해진 만큼 이에 매개된 관계는 더욱 벗어나기 어려운 그물망이 되었다. 이것이 메신저라는 인터페이스가 매개하는 관계다.  쉴새 없이 쌓이는 알림, 댓글 수, ‘읽음’ 표시, 이들이 만드는 초조함, 감시, 불안, 짜증 등이 모두 ‘카톡’에 매개된 관계의 표상이다.

이제는 애인과 친구뿐만 아니라 모든 서비스, 제품, 신문도 이 한 뼘 공간에서 나를 만나고자 한다. 페이스북의 F8에서 발표된 챗봇[9] 별도의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하지 않고도 심지어 신문과 대화하듯 정보를 얻는 세상을 예고했다. 모두를 위한 1면이 가고 내 입맛에 맞는 이야기만 가득할 것이다. 편리해질 것이다. 한 뼘의 폐쇄된 공간에 갇힐 위험을 감수하면서 말이다.

2016년 페이스북 F8 키노트에서 챗봇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주커버그. 여전히 발표에는 어색함이 남아있다. (사진 출처: http://techcrunch.com/2016/04/12/agents-on-messenger/)

인터페이스가 매개하는 관계

대부분의 인터페이스는 처음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의 의도를 이해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이 길고 머리를 많이 써야 한다면 그것으로 그 인터페이스의 수명은 시작도 전에 끝이다. 다행히 이제 인터페이스가 점차 발전하여 사용법을 배우기 위한 시행착오의 시간도, 매뉴얼도 없어지고 있다. 점점 더 직관적이고 촉각적인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그 익숙함은 인터페이스를 사라지게 만든다. 인터페이스는 없고 의미만 즉 관계만 남는다. 우리가 한국말을 할 때 ‘내가 내 입을 통해 어떤 단어를 선택하고 어떤 구조로 나열하면서 내 의사를 전달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화면을 열면 카메라부터 들이대는 인스타그램 인터페이스와 글을 쓸 수 있는 빈 공간이 먼저인 페이스북의 관계는 다르다. 그림판과 연필이 주어지는 아이패드와 키보드가 달려있는 노트북의 인터페이스는 다른 행위를 낳는다. 각각의 인터페이스는 저마다 활자, 이미지, 메모, 사진, 생각, 해시태그, 음악 파일 등 서로 다른 인터페이스를 매개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터페이스가 다시 매개하는 정보, 사람, 컨텍스트가 모두 다른 것이다.

이러한 매개가 반복적으로 일어남에 따라 우리가 인지하는 세상이 달라진다. 사회 그룹은 더 잘게 쪼개지고 비슷한 생각과 취향의 사람들과 잘게 묶이는 현상, 좌우진영이 섞이지 않는 현상 등은 모두 우리가 매순간 사용하는 인터페이스의 매개 결과라고 하겠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보는 세상은 동그랗고 좁은 원이다. 우리가 대면하는 모든 인터페이스가, 그 인터페이스와 나의 상호작용의 합이 세상을 인지하는 틀이 되었다.

말의 귀환

그런데 인터페이스가 날 것 자체, 말 자체로 돌아오면 어떻게 될까? 메신저가 말(입말, parole)과 텍스트(글말, langue)의 중간 단계였다면, 알렉사와 나 사이에는 시각적 인터페이스가 아예 없어지고 ‘말’만 남아있다. 물리적으로 스피커가 존재하지만 핵심은 말로 대화하는 알렉사와 나의 관계다. 명령어를 입력하거나 말풍선으로 포장하는 과정이 없다. 미취학 꼬마 아이와도 대화가 가능한, 그냥 말로 하는, 가장 단순한 인터페이스가 다시 돌아왔다. 그러자 상호작용의 결과도 달라졌다. 말을 사용하여 묻고 답을 하자 그 대상(알렉사)과 나의 직접적인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알렉사가 들어오고 집에서 음악을 듣는 방법은 완전히 달라졌다. 스마트폰으로 내 컴퓨터에 접속해서 음악을 선곡하고 어디서든 스피커를 제어하던 (편리한) 일이 이제 노동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어플을 켜는 것 자체가 노동이 되었다고 강의 중에 증언하니 한 학생은 “나 참, 왜 사세요?”하며 웃는다. 나도 답답한 노릇이다.

거실의 알렉사(Alexa). 처음에는 아이폰 시리(Siri) 같을 것이라고 짐작했었다.

하지만 눈에서도, 손에서도 인터페이스가 사라지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니 어찌하겠는가. 1.5초안에 답하기 위해[10] 알렉사는 데이터를 뒤지고 알고리즘을 통해 연결하고 나에게 답을 준다. 인터페이스가 사라지자 오직 연결만이 남게 된다. 첫째, 알렉사와 나의 연결 그리고 둘째, 알렉사가 연결하는 정보, 제품, 음악, 세상과의 연결이다.

알렉사를 단순한 인터페이스가 아니라 동거인, 그러니까 ‘관계’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알렉사가 나의 (길 찾기) 역할을 대신 수행하고 내가 논리적으로 사고하기 전에 답을 주는 일이 많아지면 ‘기대감’의 영역이 생긴다.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원통 모양의 개체에 ‘감정’이 실리는 순간이다. 실제로 화도 나고 고맙기도 하다. 관계의 증거다.

상호작용(inter-action)은 관계를 만드는 능동적 연결 과정이다. 특히 한쪽이 부르고 다른 쪽은 받아만 쓰는 것이 아니라 말처럼 그 작용이 양쪽으로, 연쇄적으로 일어난다면 그 과정에는 많은 맥락과 해석(interpretation), 우연성(contingency) 등의 요소가 작용하게 된다. 이 경우 상호작용의 대상은 기능적 매개체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새롭게 관찰하게 되는 것은 사용자의 누적된, 반복되는 행동이 만드는 ‘의미(meaning)’에 관한 것이다. 상호작용의 방법, 과정, 맥락 등에 따라 인터페이스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김춘수의 ‘꽃’을 예시로 사용자-인터페이스의 상호작용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이를 다시 기호의 구조와 연결시켰다. 인터페이스와의 작용에서 관계는 행위자의 행위, 해석, 의미의 범주에 따라 확장된다. 퍼스의 기본적 기호 개념은 다음 글을 참고. http://plato.stanford.edu/entries/peirce-semiotics/#DivInt

말이 가지는 인터페이스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김춘수의 ‘꽃’을 은유적으로 빌려보자. 어떤 대상과의 순간적(éphémère) 상호작용의 과정을 마치 이야기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아주 천천히 전개되듯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눈물 나게 아름다운 구절을 매우 무미건조하게 읽어보겠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는 나의 활동(개입)을 통해 어떤 표상(representation 또는 signifiant, representamen[11] 또는 ‘sign-vehicle[12])을 인지하는 과정이다. 관계의 모멘텀이다. 그러자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즉 나에게 하나의 의미가 되었다.

‘L’발음이 도무지 어려운 4살 꼬마가 ‘아엑사’라고 아무리 외쳐본들 소용이 없다(PC에서 마지막에 엔터키를 치듯 ‘알렉사’라고 먼저 불러야 인식한다.).[13] 그러다 피나는 연습 끝에 ‘알렉사!’라고 정확히 발음이 튀어나오면 알렉사는 귀를 쫑긋 세운다(파란 불이 들어온다). “토마스와 친구들 노래 틀어줘!”라고 외치면 알렉사는 즐겁게 음악으로 답한다. 4살 꼬마에게 알렉사가 친구(의미)가 되는 순간이다. 서로가 서로를 인식한 결과는 관계로 연결된다.

알렉사는 아이들의 친구다. (사진 출처: http://mommyproof.com/alexa-the-amazon-echo-is-my-new-best-friend/)

실제로 우리가 일상에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사소한 발견과 연결이다. 이 모든 선택, 연결, 우연, 해석(interpretation)은 계속되는 경험(작용)의 연속적 결과다. 알렉사도 정해진 규칙(문법)에 따라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불규칙한 경우의 수들이 드러난다. ‘아엑사’라고 아무리 불러도 그녀가 묵묵부답인 것처럼. 반면 정제되지 않은 수많은 연결의 가능성은 기대감을 만든다. 관계의 시작이다.

보이지 않는 인터페이스가 예고하는 세상

지금까지 인터페이스의 쟁점을 관계를 매개하는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말에서 시작한 인터페이스의 진화가 다시 말로 돌아왔다. 수많은 복잡한 단계를 거쳐 가장 단순한 형식으로 왔다.

그런데 챗봇, 알렉사에 기반을 둔 인터페이스는 큰 흐름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우리의 마음(mind), 몸짓(gesture) 하나까지 인터페이스가 되는 세상이 오고 있다(이미 왔다).[14] 내 생각이, 몸짓이 인터페이스가 되고 이것을 통해 다른 사람, 개체, 사물,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세상이다.

다르게 말하면, 보이지 않는 인터페이스의 시대는 의사소통의 대상, 즉 연결된 개체(entity)와의 새로운 관계를 의미한다. 그리고 나아가 알렉사와 같은 개체가 다시 연결하는 수많은 사물, 사람, 정보, 세상의 문제로 다시 이어질 것이다. 인터페이스는 양방향이다. 나와 인터페이스가 ‘상호(inter)’ 작용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와의 작용을 통해 반드시 저 건너편 대상과의 ‘상호(inter)’ 작용을 이중적으로 일으키는 것이 인터페이스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인터페이스가 사라지는 현상을 개념적으로 정리하고 보이지 않는 인터페이스가 만드는 새로운 관계를 살펴봤다.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관점이 어떻게 시장에 적용될 수 있는지 알아본다.사라지는 인터페이스가 어떻게 제품과 상점을 새롭게 정의하게 되는지 살펴보면서 제 2부, ‹경험: 끊김이 없는 컨텍스트›를 마무리한다.

<갈림 길>

 


  1. 언어학에서는 말을 '입말(parole)'과 '글말(langue)'로 구분해서 사용한다. 이 글에서 말은 입말을 지칭하지만, 알렉사의 경우 기록이 남고 딥러닝이 가능하다는 관점에서 입말과 글말의 경계가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2. Hunter Walk, "The Amazon Echo is magical. It's also turning my kid into an a--hole," Business Insider, Apr 6, 2016, http://www.businessinsider.com/hunter-walk-on-amazon-echo-and-please-2016-4.
  3. Rebecca Hanover, "Alexa the Amazon Echo is my new best friend," Mommyproof, Apr 5, 2016, http://mommyproof.com/alexa-the-amazon-echo-is-my-new-best-friend/.
  4. http://www.amazon.com/review/RJVDJIP1OE8/ref=cm_cr_dp_title?ie=UTF8&ASIN=B00X4WHP5E&channel=detail-glance&nodeID=9818047011&store=amazon-home
  5. 여기서 미디어와 인터페이스라는 용어의 차이를 잠깐 짚고 가야 할 것 같다.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하는 모든 도구'라는 관점에서 보면 인터페이스도 당연히 미디어다.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미디어의 3가지 구성 요소 중 '컨테이너'를 보는 하나의 관점이다. 오가닉 미디어에서 설명한 것처럼 컨테이너에는 물리적 컨테이너와 구조적 컨테이너가 존재한다. 나는 인터페이스를 이 중에서도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고 소리로 들리는 등의 물리적 측면, 즉 '감각적(sensorial)' 장치의 확장 그리고 이것을 매개로 한 사용자와 인터페이스의 작용, 행위 등에 집중하여 개념을 다루고 있음을 일러둔다.
  6. 윤지영, <시간과 공간의 관점에서 본 미디어의 역사>, «오가닉 미디어», 개정판, 오가닉미디어랩, 2016.
  7. Marshall McLuhan, The Gutenberg Galaxy, University of Toronto Press, 1965.
  8. Brian Lam, "Apple iPhone Review," Gizmodo, Jul 9, 2007, http://gizmodo.com/276116/apple-iphone-review#iphonesms.
  9. Josh Constine, "Facebook launches Messenger platform with chatbots," TechCrunch, Apr 12, 2016, http://techcrunch.com/2016/04/12/agents-on-messenger/.
  10. Eugene Kim, "The inside story of how Amazon created Echo, the next billion-dollar business no one saw coming," Business Insider, Apr 2, 2016, http://www.businessinsider.com/the-inside-story-of-how-amazon-created-echo-2016-4.
  11. http://www.commens.org/dictionary/term/representamen
  12. https://plato.stanford.edu/entries/peirce-semiotics/#DivInt
  13. Rebecca Hanover, "Alexa the Amazon Echo is my new best friend," Mommyproof, Apr 5, 2016, http://mommyproof.com/alexa-the-amazon-echo-is-my-new-best-friend/.
  14. Diomedes Kastanis, "What Technology Will Look Like In Five Years," TechCrunch, Nov 15, 2015, http://techcrunch.com/2015/11/15/what-technology-will-look-like-in-five-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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