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연결의 산물 (Outcome of Connections)

오가닉 네트워크의 작동 원리

How Organic Networks Work

이 책은 안과 밖의 구분이 없는 마케팅, 끝이 시작인 마케팅을 다루고 있다. 지금까지 글을 읽으며 눈치챘겠지만 오가닉 마케팅은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과정이 아니다. 연결을 만드는 과정이다. 능동적 개인이 네트워크를 만드는 과정이다. 그래서 ‘나’가 사용자든, 소비자든, 시민이든 우리가 주목하는 출발점은 ‘개인성(individuality)’이다. 개인으로서 각자의 유일한 경험이 연결되어 안과 밖이 없는 네트워크를 이룬다.

이 단락에서는 제품, 고객이라는 표현을 잠시 내려놓을 것이다. 대신 관계를 만드는 미디어, 오가닉 네트워크의 작동원리에 충실하고자 한다. 오가닉 네트워크란 결국 ‘오가닉 미디어’의 다른 표현이다.[1] 살아있다는 속성, 그러므로 연결을 통해 구조적으로 진화한다는 속성에 방점이 있다. 이 글에서는 사용자, 고객의 관점보다 개인으로서의 시민, 시민으로서의 개인에 집중했다. 이를 통해 오가닉 네트워크의 작동 원리와 산물을 정리하는 것이 목적이다.

더 나아가 아래의 사례 분석은 한편으로 ‘언어(입말parole과 글말langue)’를 오가닉 미디어의 원형(archétype)으로 제안하는 시도가 될 것이다. 언어는 우리에게 가장 오래 체화되어 온 오가닉 미디어다. 언어의 사용 메커니즘이 곧 오가닉 네트워크의 작동 원리에 그대로 적용된다는 뜻이다. 나는 습관을 바꾸고 문화를 만드는 많은 기획들이 모두 언어의 진화와 동일한 과정을 거친다고 믿는다. 여기서는 연결 관점에 집중하여 몇가지만 간추렸다.

연결의 메커니즘

오가닉 미디어 현상은 다양하지만 공통적인 작동 원리가 있다. 흩어진 개인에서 출발해서 거대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가능한 이유다. 2013년에 있었던 ‘안녕들하십니까’ 현상, 그리고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시작된 촛불 시위를 사례로 살펴보겠다. 오가닉 미디어는 PC, 스마트폰 등의 화면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안녕들하십니까’는 전에 없는 참신한 포맷과 스토리텔링, 왠지 단순한듯 복합적 전개방식, 다양한 소재와 신선한 등장 인물로 한 편의 드라마가 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3년 후 최순실 게이트는 오가닉 미디어의 진화를 보여주는 정점을 찍었다. 그럼 지금부터 현상을 분석하고 연결의 결과는 과연 무엇인지 의미를 가려보겠다.

1. 리듬과 규칙

촛불로 모인 광장에서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촬영하고 보도하는 기자였다. (c) Sang Gu Lee

광화문에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모였다. 종이컵을 받친 촛불, LED 촛불, 촛불 모양의 종이 모자 등 형태는 다양했다. 그러나 이 작은 코드가 거대한 의식을 만들었다. 매주 토요일이면 약속하지 않아도 광장으로 향하는 리듬이 되었다. 선창을 하면 후창을 했다. 누구든 여기저기서 선창을 이어갔다. 서로가 서로를 촬영했고 실시간으로 끊임없이 현장을 보도했다. 이에 SNS의 지인들은 격려하고 공감했다. 여기서 오가닉 미디어는 SNS가 아니라 규칙을 따르고 이를 통해 창발의 과정을 만들어내고 불규칙함속에서 거대한 네트워크를 만들어낸 시민 한 명 한 명이다. 여기서 ‘나’는 오가닉 미디어임과 동시에 네트워크와 분리되지 않는 네트워크 자체다.

‘안녕들하십니까’의 경우도 같은 맥락이지만 커뮤니케이션의 리듬은 훨씬 강렬했다. 주거니 받거니 장단이 척척 맞는 운율이었다. 오프라인 공간의 벽에 붙이는 벽보가 매체로 이용되었다. 처음에는 대학 게시판에서 시작했지만 아파트 엘리베이터, 공공 건물 화장실 등 물리적 공간의 벽면에 큼지막한 손글씨의 편지가 붙었다.[2] 주소도 수신자도 없는 대형 손편지에 누구든지 어디서든지 답을 할 수 있었다. 문자를 보내면 문자로 답을 하듯 손글씨 벽보에는 손글씨로 답을 했다.

우리는 이미 온라인의 수많은 도구를 통해 포스팅, 댓글, 패러디, 좋아요 등 각종 방법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데 익숙해 있다. 대형 손편지 미디어는 전통 방식으로 회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직간접적으로 메시지를 주고 받는 지금의 익숙한 미디어의 응용판이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에서 일상적으로 묻고 답하고 외면하고 공감하는 커뮤니케이션에는 리듬(라임)이 있다. 각각에는 최소한의 커뮤니케이션 규칙(@맨션, 리트윗, 해시태그, 공유 방법, 공감 표시 등)이 있고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문화가 있다.

거대한 손편지 커뮤니케이션도 같은 선상에 있다. 대화가 즉각적이거나 평면적이지 않을 뿐이다. 전염병이 퍼지듯 ‘나도 안녕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의 형식(규칙)을 갖춘 메시지가 돌림 노래를 하듯 전이되었다.[3] 그리고 클릭 한번의 노동이 아니라 삐뚤빼뚤 손글씨를 벽에 붙이는 수고스러운 과정은 한번 더 콘텐츠를 스스로 검열하고 신중해지는, 이 현상에 가치를 더하는 체험이 되었다.

중앙대학교 화장실에는 환경미화원의 손편지와 학생의 답장이 게재되었다.

이것이 바로 오가닉 미디어(네트워크)의 첫번째 작동 원리다. 오가닉 미디어(네트워크)는 규칙과 약속에 기반을 둔다.

최소한의 규칙과 리듬이 불규칙하게 반복되고 전이된다. 연결이 일어나는 과정이다. 이러한 속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바로 언어다. 예를 들어 모든 언어는 문법에 의한다. 문법이란 규칙 즉 약속이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말을 하고 시도 쓰고 노래도 부르고 관계를 형성한다. 언어는 의사 소통을 가능하게 하지만 단순한 물리적 도구나 장치가 아니다. 공유된 규칙을 서로 익히고 사용하고 체화하는 과정이 언어를 매개로 네트워크를 만든다. 이에 따라 언어는 진화하거나 도태된다.

«오가닉 미디어»에서 논의한 것처럼 연결된 세상에서 물리적 컨테이너는 해체되었다. 페이스북이든 구글의 검색 서비스든 오직 구조와 규칙만이 서비스를 작동하게 하며 이 규칙들은 지속적으로 개인의 요구와 활동에 따라 변화한다. 각각의 미디어를 작동하게 하는 최소한의 규칙과 약속, 이에 대한 실행과 반복이 연결의 과정이다.

2. ‘내’가 주인공

오가닉 미디어에서 주인공은 나 자신이다. 촛불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은 저마다 다른 깃발, 퍼포먼스, 재기 넘치는 피켓으로 목소리를 냈다. 심지어 아파트 베란다도 게시판으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저는’으로 시작되는 자유발언대는 도시 곳곳에서 밤을 새고 이어졌다.

이 모든 참신한 아이디어와 실행의 사례는 서로 묶을래야 묶을 수가 없다. 사람들은 정당에 소속되지도 않았고 군중도 아니었으며 그들 자신이었다.[4] 민중, 투쟁, 계급 등과 같은 용어는 희석되었고 각자가 유일한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으로서 담론을 꽤매고 재구성했다. 현장을 취재하고 각자의 SNS에서 친구들을 독려하고 하소연하고 결의도 웃음도 나눴다. 그 이야기가 행해지고 전해지고 흐르는 그 상태, 그것이 곧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들고 나왔다는 어느 모임의 깃발. (출처: 권수연, 하대석, <광화문 화제의 깃발… 장수풍뎅이 연구회>, 스브스뉴스, 2016년 12월 12일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892341&plink=THUMB&cooper=SUBUSUMAIN])

‘안녕들하십니까’에서의 대형 손편지도 수많은 1인칭 시점의 한 판 축제였다. 사회, 경제, 정치 도처의 뼈아픈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결국 이야기의 핵심은 나의 고백에서 시작되었다. 고백이든 반성이든 주장이든 나를 시작점으로 했기에 참여도 쉬웠다. 누구든지 자신이 처한 상황, 자신이 아는 이야기에서 출발했고 공동체에 가입할 필요도 없었다. 취업준비생, 고등학생, 엄마, 평범한 회사원 등 소속이나 직업에 관계없이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했다.[5] 그런데도 메시지는 이어졌다. ‘안녕하지 못하다’는 고백이 전체 드라마를 관통했기 때문이다.

도처에서 발생한 이벤트를 어떻게 엮느냐에 따라 다시 수많은 줄거리가 생산될 수 있다. 벽보라는 물리적 공간에 기반한 편지 형식은 다양한 장소만큼이나 다양한 컨텍스트를 갖고 있었고 그만큼 풍부한 소재를 제공했다.[6]

‘안녕들하십니까’ 사례에 나타난 ‘수용자’ 중심의 소통을 언급한 기사 이미지 (출처: 금준경, <‘안녕들 하십니까’에 왜 열광할까>, 오마이뉴스, 2013년 12월 15일,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37264)

이것이 바로 오가닉 미디어(네트워크)의 두번째 작동원리다. 반드시 사람들의 참여가 필요하다. 말(parole)보다 이 원리를 더 잘 표현하는 원형이 있을까. 사용하는 사람이 없으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사용자의 활동이 없는 네트워크는 실체가 없다. 말은 화자를 통해 생산되고 사용되고 소비되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소멸된다.

말은 물리적 형체도 송출 기술도 없지만 어디든지 전달될 수 있다. ‘나’를 통해 흘러다닌다. 그 과정에서 더해지고 와전도 되면서 1인칭, 2인칭, 3인칭의 이야기가 더해진다. 매개자는 나 자신이다. 우리는 말을 하는 사용자이기도 하지만, 나아가 언어의 구조를 내재화시킨 컨테이너[7] 자체이기도 하다. 문법을 구사하고 말을 하는 것이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3. 매개와 재매개

프랑스의 일간지 “Les Echos”의 기자가 광화문 광장에서 진행되는 촛불 시위를 실시간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미지는 기자의 동영상 이미지 캡쳐: https://www.facebook.com/lesechos/videos/1418360331508650/)

최순실 사건과 ‘안녕들하십니까’ 사례에서 방송사, 언론사와 같은 전통 미디어들은 이 거대한 네트워크의 구성과 확산에 하나의 노드로 참여했다. 수백만 명이 광장에 계속 모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사를 만들었고 해외에도 많이 보도되었다. 지상파, 케이블 채널, 유튜브, 페이스북 라이브 등 미디어의 컨테이너는 무엇이든 상관이 없다. 누가 말하고 누가 듣고 있는가가 그 미디어를 결정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 미디어들은 촛불을 든 시민들의 매개 활동을 재매개(remediation)하는 확성기로 작용했다[8].

‘안녕들하십니까’도 조직화되어 있지 않았다. 개인의 자발적 판단과 참여가 원동력이 되었다. 심지어 촛불 시위와 달리 한 곳에 모이지도 않았다. 한 지점으로 모이는 의식이 없이도 시간을 두고 상호작용하면서 전체가 결과적으로 유기체를 이뤘다. 각각의 편지는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조각들이었으며 연결되어 있지도 않았다.

대신 연결과 매개는 인터넷 서비스와 신문, 방송 등을 통해 이뤄졌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카카오톡 등과 같은 SNS가 대자보, 벽보를 퍼뜨리고 알리는 보조적 역할을 수행했다. 신문과 방송은 물리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산발적인 이벤트와 흩어진 사람들을 안방까지 연결했다. 온오프라인을 취재한 다양한 뉴스는 관심을 낳고 다시 다른 콘텐츠가 생산되는 데에 일조했다.

영국 BBC도 2013년 12월 19일 ‘손글씨 벽보(Handwritten Poster)’ 사례를 보도한 바 있다. [“South Korea: Spread of the handwritten poster protest,”
BBC News, Dec 19, 2013, http://www.bbc.com/news/blogs-news-from-elsewhere-25450218.]

2013년 그 겨울의 대형 손글씨의 벽보는 이제 모습을 거의 감췄다. 그러나 오가닉 네트워크는 때로는 촛불로, 거리의 행위 예술로, 가슴팍에 꽂은 옷핀으로, SNS의 태그로 표현되고 중계되고 전염되면서 다양하고 산발적으로 계속 되고 있다. 특히 이 두 사례는 온오프라인의 경계가 없어지고 SNS, 신문, 방송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현상, 우리 스스로 노드가 되고 미디어가 네트워크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오가닉 미디어 현상 자체이자 미디어의 네트워크적 진화를 상징하는 이정표로 기록될 만하다.

여기서 오가닉 미디어(네트워크)의 세번째 작동 원리를 정리해 볼 수 있다. 매개와 재매개를 통한 유기적 진화다.

예를 들어 초기의 언어는 기본적인 의사소통 기능에 충실했을 것이다. 그러나 언어는 유희가 되고 시가 되고 멜로디가 되고 지식이 되었다. 우리가 규칙을 반복해서 사용하고 응용하는 과정에서 언어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넘어 문화가 되었다. 처음에는 최소 단위의 사용 규칙이더라도 그 규칙의 사용이 반복되면 그 과정은 창발을 일으킨다. 우리를 울고 웃게 하고 감동하고 깨닫게 하는 모든 콘텐츠가 그렇게 탄생한 것들이다.

의사소통을 하면 할수록 문화가 만들어지고 문화가 발전하면 할수록 언어도,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도 함께 발전한다. 그렇게 언어는 세상 사람들의 생각을 잇고 관계를 만들며 인류의 사회적 진화를 만들어왔다.

사회란 수많은 사회적 상호작용의 합이다.[9] 언어, 몸짓, 외모(장신구), 제도, 관습 등을 통해 다양하게 교류한다. 이 상호작용이 네트워크의 흥망성쇠를 만든다. 이 관점에서 언어는 대표적인 상호작용의 형식이다. 사람들이 사용하면 할수록 언어는 지속적으로 퍼져 나가고 영향력도 확장된다. 사람들의 참여가 언어(미디어)를 진화시키고 언어(미디어)의 사용은 네트워크를 만든다. 이 ‘유기성(organicité)’이 연결을 네트워크로 조직화하는 힘이다.

연결의 결과

위의 특성들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새로운 미디어 현상을 낳았다. 흩어진 이야기는 서로가 모두에게 보내는 답장이자 거대한 편지 네트워크가 되었다. 편지를 직접 주고 받아서가 아니다. 친구의 SNS를 매개로, 신문의 댓글에서, 방송을 통해 간접적으로 연결, 공유, 더해진 네트워크이다. 아래 스키마는 이와 같은 오가닉 네트워크의 연결 과정을 참여자 행위를 기반으로 설명하고 있다.

1. A가 편지를 써서 붙인다. 다양한 매개체(벽보, 언론, SNS 등)가 A의 메시지를 매개하고 B도 편지로 답할 경우 A와 B의 매개된 관계가 형성된다. 2. 메시지를 온라인에 공유하는 C, 이런 이야기를 취재하고 보도하는 E, 비평하거나 좋아하는 D, F 등이 모두 매개자이다. 3. 직접 벽보나 콘텐츠를 생산하지 않아도 메시지를 읽고 뉴스를 시청하는 사람, ‘안녕들하십니까’로 교체된 친구의 프로필 사진을 보는 사람 등이 모두 메시지의 소비자임과 동시에 매개자다. 콘텐츠로 매개된 사람들간의 네트워크, 사람들의 행위로 매개된 콘텐츠간의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진화한다. 오가닉 네트워크다.

그렇다면 연결의 결과는 무엇인가? 경험을 생산하고 매개하는 모든 개인, 시민, 언론, 방송 그리고 이들을 통해 생산되고 매개된 편지, 동영상, 이미지, 이야기가 서로 연결된 결과는 무엇인가? 전국에 누적 천만 명이 넘게 모였다는 기록인가? 물론 국정농단, 부정부패, 실업률 등 사람들을 움직이게 한 원인이 제거되는 것도 하나의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보다 거시적 관점에서 연결의 결과는 집단적 기억[10]이다. 개인들의 체험의 합이 만드는 총체적 기억이 그 결과다.

이 집단적 체험은 각자에게 기록된 기억이다. 광장의 모습, 함께 부른 노래, 찬 겨울 촛불을 든 손가락, 사람들의 이야기, 나의 ‘라이브’ 중계까지 낱낱이 참여의 표상이며 기억이다. 서로 뗄려야 뗄 수 없는 개인의 체험이 서로의 뉴런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체험이 모여 인식을 변화시키고 행동을 만들고 습관을 만든다. 미래에 새로운 소식, 사건, 현상을 인지할 때 이 촉각적 기억은 되살아난다. 오가닉 미디어 즉 네트워크의 힘은 바로 이 집단적 기억에 있다. 공유된 기억, 체험, 그 배움이 네트워크의 힘이다.

네트워크의 지속 가능성은 여기에 달려있다. 비록 그 형태는 손편지부터 촛불, 영상 하나까지 다양하게 변화하고 연결되고 끊어지기를 불규칙하게 반복하겠지만 그 안에 규칙과 리듬이 내재된 것이다. 이것을 만드는(따르는) 참여자가 있고 서로의 역할이 있는 한 집단적 기억은 계속된다. 여러 유형의 서로 다른 현상을 통해 지속되는것이다. 느슨한듯 응집된, 개별적이면서도 집단적인 체험이 연결의 결과인 동시에 네트워크의 지속성을 만드는 강력한 동력이다.

오가닉 네트워크의 작동 원리는 영역에 관계없이 같다. 기획자, 사업자, 마케터들의 업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현장에서 일하면서 겪는 어려움 중 하나는 ‘네트워크’라는 단어를 막연한 은유 또는 ‘많은 사람의 무리’로 오해한다는 것이다. 이 인식을 돌려놓고 체득하게 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오가닉 네트워크의 핵심은 ‘살아있다’는 데에 있다. 이것은 네트워크의 구조, 작동의 규칙, 연결의 주체와 역할 등이 구체적으로 정의되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업의 개념을 네트워크로 전환하기 위한 전제 조건들이다.

독자들의 인식의 확장을 막지 않기 위해 이 단락은 여기서 마무리 하는데 만족하겠다. 다만 책에서 끊임없이 언급하는 연결, 경험, 고객 등의 개념을 만날 때 이 단락에서 언급한 오가닉 미디어(네트워크)의 작동 원리를 기억해주기 바란다.

<갈림 길>


  1. 오가닉 미디어는 "살아서 성장하는 유기적 미디어"로, 그 형태는 네트워크로 표출된다. 독자의 관점에 따라 이 글에 나오는 미디어와 네트워크를 서로 대체해서 읽어도 무방하다. 오가닉 미디어에 대한 자세한 이해는 «오가닉 미디어»를 참고하기 바란다.
  2. <안녕들 하십니까>, 위키피디아, http://ko.wikipedia.org/wiki/안녕들_하십니까.
  3. 박성완, <김무성, '안녕들하십니까' 소자보 게시>, 뉴시스, 2013년 12월 19일,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31219_0012605759.
  4. 윤지영, «오가닉 미디어», 오가닉미디어랩, 2016, p.173.
  5. 손호석 등, <고교생·주부·직장인도 ‘안녕들하십니까’ 신드롬>, 한겨레, 2013년 12월 16일,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15585.html.
  6. 2부에서 살펴본 것처럼 오가닉 미디어에서는 컨텍스트가 콘텐츠의 가치 형성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오가닉 미디어» 에서도 다루었다(윤지영, <미디어가 해체되고 재구성된다>, «오가닉 미디어», 개정판, 오가닉미디어랩, 2016).
  7. 윤지영, <컨테이너의 숨겨진 쟁점의 이해>, «오가닉 미디어», 개정판, 오가닉미디어랩, 2016.
  8. Jay David Bolter and Richard Grusin, «재매개: 뉴미디어의 계보학(Remediation : Understanding new media)», 이재현 역, 커뮤니케이션북스, 2006(원서출판: 2000).
  9. Georg Simmel, «La sociologie», PUF, 1999(원서출판: 1908)
  10. 여기서 기억은 베르그송의 기억(Mémoire)과 같다. '수브니르(Souvenir)' 등을 포함한 총체적 기억에 가깝게 사용했다. [Henri Bergson, «물질과 기억(Matière et mémoire)», 박종원 역, 아카넷, 2005(원서출판: 1896).] '집단적'은 사회적 그룹이나 집합의 의미보다, 개인들이 동시에 경험하고 그 경험이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유기체(organism)의 의도로 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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