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끊김이 없는 컨텍스트 (Seamless Context)

끊김이 없는 컨텍스트를 찾아서

In Search of Seamless Context

얼마 전 부모님 댁에 TV가 새로 들어왔다. 놀란 것은 10년 전보다 더 복잡하고 무거워진 리모컨이었다. 너무 친절하게 제어가 가능한 모든 기능을 꺼내 놓고 사용자에게 선택권을 준 것이다. 덕분에 채널을 돌리고 볼륨 조절 버튼을 찾는 데만도 시간이 필요했고 채널 한번 돌릴 때도 커다란 리모컨의 무게를 감당해야 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우리는 인터페이스에 왜 사용하지도 않는 기능을 모조리 집어 넣고 있는 것일까? 사용성이 다 다르니 설마 골라서 누르는 재미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복잡할수록 더 똑똑해 보이기 때문인가?[1]

인터페이스의 핵심은 기능이 아니다. 그러므로 기능을 설명하는 메뉴 구조도, 버튼의 나열도 아니다. 핵심은 사용자의 ‘행위(action)’다. ‘어떤 사용자 행위를 유발하는가?’가 인터페이스를 정의하는 것이다. 인터페이스는 행동을 유발하지 않으면 똑똑해 보이든, 멋져 보이든 소용이 없다. 처음 서비스에 진입했을 때, 처음 어플리케이션을 실행했을 때 사용자의 첫 행위가 무엇인가, 습관적으로 하는 행위가 무엇인가, 이것이 그 서비스를 정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선 글에서 컨텍스트를 주어진 환경이 아니라 사용자의 경험을 통해 발현되는 능동적 과정으로 정의했다. 인터페이스는 그 연장선에 있다. 발견, 선택, 경험, 공유의 컨텍스트를 발현시키는 실체가 인터페이스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컨텍스트를 이해했다고 해도 이것을 실행하는 실체없이는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환기하자면 모든 문제는 미디어가 네트워크라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미디어가 단순히 전달 도구가 아니듯 컨텍스트도 단순히 주어진 환경이 아니다. 이에 따라 인터페이스도 기능을 수행(execution)하는 물리적 장치의 의미를 넘어설 수밖에 없게 되었다. 화면, 버튼 등과 같은 접점의 의미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 글은 기능을 수행하는 물리적 장치가 아니라, 연결을 만드는 구조로서 인터페이스를 살펴본다. 행위자(actor)로서 사용자와 인터페이스의 능동성에 관한 이야기기도 하다. 그럼 지금부터 인터페이스의 개념을 간략히 정의하고, 정보, 행위, 기억 관점에서 인터페이스의 쟁점을 분석하는 시간을 가진다. 이 과정을 통해 인터페이스에 대한 관점을 기능에서 연결로 전환시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인터페이스의 정의

시장에서는 무엇보다 ‘사용자 인터페이스(User Interface, 이하 UI)’ 관점에서 웹이든, 스마트폰이든, 사물인터넷이든 간에 내 의도에 반응하는 ‘조작할 대상’으로 인터페이스를 주로 다뤄왔다.

예을 들어 도널드 노먼(Donald A. Norman)은 이것을 시각적 관점에서 정립했다. 자신의 저서에서 칭한 ‘시스템 이미지(Visible structure, System image)’는 인터페이스의 디자인이 제공하는 가시적 정보(구조, 라벨, 매뉴얼 등)와 사용자의 머릿속에서 재현되는 시각적 이미지를 포함한다.[2] 사용자는 이 시스템 이미지를 통해 시스템에 대한 멘탈 모델(mental model)을 포함한 지식을 습득한다는 것이다.[3]

그밖에 소프트웨어를 문화 인터페이스로 본 마노비치,[4] 미디어 인터페이스를 재매개(remediation) 개념으로 설명한 볼터와 그루신[5] 등도 시각적 관점에서 인터페이스의 본질에 접근했다.

하지만 인터페이스란 반드시 손으로 만질 수 있거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에 국한되지 않으며 상호작용을 유발하는, 커뮤니케이션을 일으키는 모든 기호가 인터페이스다. 포괄적으로 정의하자면,

인터페이스는 서로 다른 개체들이 커뮤니케이션(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장치, 방법, 형식, 공간으로 기호(sign)의 형식과 속성을 기반으로 둔다. 여기서 기호란 시각적 상징뿐만 아니라 소리, 촉각 등 모든 감각적 (sensorial) 대상을 포괄하는 것이다.

이것은 기호학에서 인터페이스를 “기호의 본성에 기반을 둔,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접점”이라고 정의한 관점과 연결된다.[6] 즉 일방향이 아니라 양방향인 것이다.

예를 들어 주전자도 하나의 인터페이스다. 그런데 이 정의에 의하면 주전자와 내가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주전자는 어디로 물을 넣고 어디로 물이 나오는지 내게 보여준다. 온몸으로 보여주는 인터페이스를 따라 나는 물을 따라 마신다. 주전자와 나의 상호작용이다. 이 때 주전자의 모양은 나의 행위를 유발하는 정보로 작용한다. 즉 위의 정의에서 “장치, 방법, 형식, 공간”은 사용자에게 모두 정보(information)로 나타나며 “상호작용”은 사용자와 인터페이스의 행위(action)라고 볼 수 있다(인터페이스의 행위란 대체 무엇인지 곧 설명하게 될 것이다).

아래 그림에서 왼쪽은 채널의 수가 다섯 개도 안 되던 시절의 인터페이스다. 시계방향으로 돌리면서 채널을 선택했다. 소파에서 매번 일어나야 하는 것이 귀찮지만, 머리를 쓸 필요는 없었다. 인터페이스가 주는 정보와 사용자의 행위 관계는 명확했다. 숫자가 표시된 동그라미 모양과 작은 손잡이는 사용자에게 정보다. 동그라미를 돌려서 채널을 선택하는 행위를 유발한다.

이것이 발전한 것이 오른쪽의 리모컨이다.  TV 수신기와 리모컨이 적외선으로 통신하게 되자 몸을 움직일 필요는 없어졌다. 그러나 기능이 많아지고 따라서 버튼 수도 늘어남에 따라 인터페이스는 연결이 아니라 끊김을 만들면서 점점 비대해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TV의 인터페이스는 채널을 선택하고 화면 조정 등 시청 환경을 제어하는 장치(기능)에 제한되어 있었다.

버튼의 위치, 생김새, 촉각, 버튼 옆의 버튼 즉 버튼의 환경 등이 사용자에게는 모두 정보다. ‘+’ 표시를 통해 ‘나를 누르면 소리가 커집니다’, 초인종은 입체적인 버튼 모양을 통해 ‘나를 누르면 벨이 울립니다’라는 정보를 전달한다. 위의 TV 리모콘은 ‘나는 이렇게 많은 기능을 수행합니다’라는 정보를 전달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정보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연결이다. 사용자와 대상(개체)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존재하는 일종의 언어(프로토콜)라고 할 수 있다. 초인종을 눌러 도착을 알리고, 버튼을 눌러 문을 연다. 문과 내가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해 벨 버튼, 잠금장치, 인터폰이 존재하는 것이다. TV 리모컨은 나와 TV 프로그램을 연결하고 인터폰은 나와 방문객을 연결한다. 행위를 유발하지 않는 정보는 무용지물이다. 오히려 사용자의 직관적 행위를 방해하는 장애물일 뿐이다.

정보, 행위 그리고 기억의 선순환

이러한 전통적 관점의 인터페이스는 점차 능동적 주체로 진화하고 있다. 연결된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에 따라 인터페이스를 존재하게 하는 정보, 행위라는 요소에 ‘기억’ 요소가 더해지면서 인터페이스와 사용자의 관계는 비로소 역동적인 것으로 바뀌고 있다.

인터페이스는 정보, 행위, 기억의 선순환을 통해 역동적으로 작동한다.

이제는 영상을 수신하는 장치도, 영상을 보는 화면도, 편집 장치도 모두 내 손 안에 있다. 이에 따라 정보의 종류도, 나의 행위도 늘어났다. 사용자의 행위가 다시 정보로 반영된다. 유튜브, 페이스북에서 어느 영상을 봤다는 행위, ‘좋아요’, ‘눈물 나요’ 서로 댓글을 달고 나중에 보려고 저장하고 주제별 재생 목록도 만든다. 이 모든 행위가 나와 타인에게 정보가 되어 ‘당신이 좋아할 만한(You might like)’ 목록 등으로 돌아온다. 정보가 행위를 유발하고 행위가 정보가 되는 과정인데, 이런 선순환이 이뤄지려면 이 사이에 존재하는 단계가 하나 더 필요하다.

어떤 행위를 했는지 기억하는 과정이다. 사용자가 아니라 인터페이스가 기억하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사용자 행위가 다시 추천 목록, 조회 수, 댓글 수, 이를 포함하는 메뉴 (또는 ‘시니피앙 Signifiant)[7])[/footnote] 등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유튜브의 시청 화면. 사용자의 컨텍스트에 따라 수많은 정보가 노출되어 있다. 이를 통한 사용자의 모든 행위가 새로운 정보를 생성하는 연결 행위다.

위의 이미지에서 인터페이스는 무엇인가? 이 영상을 200만 명이 넘게 봤고 1만 명이 좋아했다는 정보, 로얄 오페라 하우스가 업로드했다는 정보, 구독자가 20만 명이 넘는다는 정보다. 내가 저장한 ‘나중에 보기’ 리스트 중에 11번째 영상이라는 정보, 이 영상을 공유할 수도, 저장할 수도, 크게 볼 수 있다는 정보다. 이 영상이 포함된 50개가 넘는 재생목록도 있다는 정보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용자가 생성한 정보다.

이 많은 정보가 내 행위를 유발한다. 시청하고 평가하고 저장하고 공유하고 구독하고 선택한다. 이 모든 행위는 다시 기억되어야 한다. 인터페이스가 기억해야 한다. 어디에 어떤 것을 기억으로 쌓고 언제 무엇을 꺼내서 보여 줄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정보도 사용자가 생성하고 행위도 사용자가 하지만 인터페이스의 이 기억 과정이 정보와 행위를 가이드하는 것이다.

사용자의 행위가 계속 새로운 정보를 생성하기 때문에 인터페이스는 시시각각 역동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시청하기 전, 하는 동안, 시청 후가 다르다. 아래 도표는 이 과정을 단순하여 비교한 것이다.

예컨대 시청은 다른 시청을 낳아야 한다. 내가 어떤 영상을 시청했다는 사실이 곧 새로운 인터페이스(즉 새로운 접점, 정보, 환경, 공간)가 되는 것이다. 이 새로운 인터페이스가 다시 시청을 낳는 것이다. 사용자 행위가 정보를 연결하는 행위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시청 직후에 나의 행위는 발견과 선택에 집중된다. 유튜브, 페이스북, 넷플릭스, 아마존TV에서 ‘내가 좋아할 수도 있는’ 영상, 이어지는 에피소드가 자동으로 재생되면서 이것을 도와준다. 끊김이 없는 컨텍스트를 만드는 것은 정보-행위-기억의 선순환이다.

사용자의 시청 행위만을 중심으로 인터페이스를 단순화시키고 대표적 예시만 표현한 것이다. 이 밖에도 유튜브의 동영상 생성 및 방송 등 다른 차원의 인터페이스들이 공존한다.

정보-행위-기억이 선순환의 고리로 연결되지 못하면 사용자의 습관을 만들기 어렵다. 사용자는 무의식적으로 버튼을 누르고 무의식적으로 다음 에피소드의 재생 버튼을 눌러야 한다. 이러다 밤을 새야 한다. 행위가 나도 모르게 반복되고 습관이 되려면 내가 기억하는 것은 점점 적어지는 대신 인터페이스가 기억하는 정보의 양이 점점 더 커져야지만 가능하다. 아마존 파이어 TV가 그렇다. 나의 생각과 행위는 점점 줄어드는 반면 능동적 행위는 모두 인터페이스가 맡는다.

끊김이 없는 컨텍스트를 찾아서

아마존 TV를 보기 시작하면서 넷플릭스와 HBO의 시청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인터페이스 때문이다. 이제 인터페이스는 나의 모든 행위를 기억한다.  검색기록, 재생기록, 매칭 결과 등 사용자의 경험을 기반으로 하여 행위가 지속적이고 연쇄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억 장치다. 고객의 경험을 기반으로 잠재적인 행위를 유발하는 것이다. 인터페이스의 성패는 이 구간에서 좌우된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인터페이스의 역동성이 여기서 발생한다.

아마존 TV의 리모컨에는 음성 검색 버튼, 홈, 앞으로·뒤로 가기, 확인 버튼만 존재한다. 리모컨에 계속 늘어나던 버튼은 점차 간소해지는 과정을 거쳐 아예 없어지는 중이다. 그럼에도 찾고 발견하고 시청하고 보고 저장하고 구매하고 평가하는 행위는 여전히 가능하다. 이 모든 행위를 말로 한다. ‘알렉사’도 연결되어 있다.

아마존 TV의 인터페이스는 리모컨, 알렉사, 동영상, 데이터 등과의 연결된 관계를 포괄한다. 알렉사는 이어지는 글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버튼 누르는 수고조차 사라지는 대신 모든 수고는 아마존 TV 안에서 일어난다. 위의 스키마는 점차 단순해지는 사용자 행위와 점차 확대되는 인터페이스의 연결 범위를 대비해서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아마존 TV의 인터페이스는 아마존 프라임 TV, 넷플릭스, HBO 콘텐츠, IMDb의 데이터와의 연결을 포함한다. 무엇보다 사용자의 행위가 기록되고 처리되고 다시 사용자 행위를 유발하는 정보로 쓰인다.

아마존 TV가 허용하는 사용자의 행위 범위는 넓지만 (명령하다, 발견하다, 저장하다, 구매하다 등) 실제로 이를 위한 행위 자체는 단순하다. 즉각적이고 무의식적이다. 그냥 ‘반응’할 뿐이다. 내 행위가 단순해질수록 더욱 컨텍스트는 끊김이 없이 연결된다.

인터페이스가 연결하는 세상

지금까지 인터페이스의 쟁점을 정보-행위-기억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인터페이스는 결국 정보-행위-기억 간의 역동적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연결 구조를 총칭한다. 정보는 행위를 낳고 행위는 기억(기록)되며 이는 다시 정보로 쓰인다. 이때 정보는 복잡한 기억력과 인지 활동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단순하고 즉각적인 ‘반응’으로서의 행위를 일으켜야 한다.[8]). 그 무의식적인 연결의 경험이 반복 행위를 낳기 때문이다.

인터페이스 없이는 그 어떤 연결의 실체도 없다. 끊김이 없는 컨텍스트도 그러므로 네트워크도 없다. 인터페이스는 기능을 수행하는 장치가 아니라 사용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을 연결하는 행위자다. 한번의 거대한 연결이 아니다. 사소하고 작은 연결의 행위가 반복되어 만드는 결과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 있든 각종 인터페이스를 통해 아침부터 밤까지 세상과, 심지어 내 과거(경험)와 항시 연결되어 있다. 매 찰나 인터페이스에서 인터페이스로 끊김이 없이 옮겨 다닌다. 매 순간 찾고 보고 대화하고 듣고 만들고 구경하고 즐기고 중계하고 구매하면서 미디어로서 우리가 만드는 연결은 끝이 없다. 일상이 모두 연결 행위다.

이에 따라 우리와 상호작용하는 인터페이스도 모두 능동적 행위자(actor)로 정의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9] 인터페이스가 능동적일수록 우리의 행위는 끊기지 않고 연결된다.

다만 인터페이스가 기억하는 세상은 나의 거울이다. 인터페이스가 연결하는 세상은 내 의도에 꼭 맞는, 그래서 가장 좁은 세상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만드는 모든 인터페이스가 타인과 세상을 연결하는 구조, 접점, 경험이 되고 있다. 연결된 세상에서는 사소한 버튼 하나도 사회 관계를 디자인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메이커로서, 창작자로서, 이용자로서, 매개자로서 연결을 만드는 과정에 행위자로서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우리가 세상을 매개하고 세상에 매개되는 끝없는 순환 과정이다. 인터페이스와의 공생이 시작되었다.

<갈림 길>

 


  1. Donald A. Norman, The Design of Everyday Things, Basic Books, 1988, p. 174. (초판(1988)의 제목은 The psychology of everyday things였으나 개정판부터 The design of everyday things로 제목이 변경되었다. 2013년 출간된 개정판이 PDF로 공개되어 있다.)
  2. Donald A. Norman, op cit., p. 17.
  3. 상동, p. 190.
  4. Lev Manovich, «소프트웨어가 명령한다(Software Takes Commands)», 이재현 역, 커뮤니케이션북스, 2014(원서출판: 2013).
  5. Jay David Bolter and Richard Grusin, «재매개: 뉴미디어의 계보학(Remediation : Understanding new media)», 이재현 역, 커뮤니케이션북스, 2006(원서출판: 2000).
  6. Mihai Nadin, “Interface design: A semiotic paradigm," Semiotica, 69-3/4, 1988, p. 272.
  7. 우리말로는 기표 또는 시니피앙으로 번역되는 불어 ‘Signifiant’은 언어학자 소쉬르(Saussure)가 제안한 개념이다. 소쉬르에 의하면 언어의 기호는 지시대상과 직결되지 않는다. 대신 기호는 시니피앙(significant)과 시니피에(signifié)의 상호보완적, 중재적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데, 전자는 겉모습 즉 청각적 이미지(image linguistique)를, 후자는 이것이 내포하는 의미(개념)를 말한다. 구조주의 언어학의 근간이 된 이 개념이 기호학, 미학, 사회학, 정신분석학 등 얼마나 무수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언급하지 않겠다. 이 글에서 언급하는 시니피앙은 기호학 관점에서 인터페이스를 다룬 다음 논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Mihai Nadin, “Interface design: A semiotic paradigm”, Semiotica 69-3/4, 1988, p. 269.
  8. 돈 노먼을 이것을 임무(task)과 행동(activity)의 차이점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장을 보다(go shopping)'라는 행위는 '장보러 이동하다', '장바구니를 찾다' 등 더 작은 단위의 임무들(tasks)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임무에 국한된 디자인보다 전체가 끊김이 없이 연결된 행위 디자인이 핵심이다. 우리가 이전 글 <컨텍스트란 무엇엇인가>에서 컨텍스트의 4요소를 중심으로 언급한 내용과 연결된다. Donald A. Norman, op. cit., 2013
  9. Bruno Latour, <Une sociologie sans objet? Remarques sur l'interobjectivité>, In <<Sociologie du travail>>, pp.587-607, 1994.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